[입장문]
교섭창구단일화 강제하는 개정안 반대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취지가 온전히 살아나게 하라.
-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 부쳐
지난 9월 9일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었다. 이것으로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원청 등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이하 ‘실질사용자’)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고, 교섭 결렬시 투쟁에 나섰을 때 불법파업이라는 오명을 쓰고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로 연결되는 고리도 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는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그 내용을 후퇴시키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바로 11월 25일 입법예고 된, ‘실질사용자’를 상대로 한 교섭에 대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강제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이다. 교섭창구단일화는 기업에 복수의 노동조합이 존재할 경우 교섭창구를 단일화해 교섭대표노조만이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현재의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자체가 소수노조의 노동3권을 침해하고, 자율교섭의 가능성을 사용자에게 맡겨 교섭형태의 결정에 대한 노동자 권리를 박탈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애초 이에 해당되지도 않는 기업의 틀을 넘어서는 ‘실질사용자’를 상대로 한 교섭에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다시금 제약하고, 사용자에게 교섭에 대한 주도권을 넘겨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노조법상 교섭 상대방을 ‘실질사용자’로 확장해, 원청 등을 상대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적인’ 교섭권을 제도로 확인하고 보장했다는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개정법은 하청노동자의 직접 교섭을 승인하고 있지만, 시행령에서 다시금 창구단일화를 통해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법 집행의 효율을 넘어 개정의 취지 자체를 무화시키는 조치다.
이를 피해 가는 정부의 화법은 ‘교섭단위 분리’다. 시행령 개정안에서도 교섭단위 분리 사유를 확대해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만 교섭단위를 분리해 교섭이 가능하게 된다고 부연한다. 그러나 정부가 예고한 개정안으로는 교섭단위 분리가 그리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게 교섭단위가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권리보장이라 할 수는 없다. 애초 개정법에 따라 그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교섭단위 분리’라는 필터를 거쳐야만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데, 그 시행령을 어떻게 개정법에 따른 ‘교섭 절차에 관한 보완’ 수준이라 할 수 있을까.
산업단지 공단에는 작은 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다. 이 작은 사업장들은 자본의 하청, 부품업체 등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전한 자영업도 있겠지만 작은 사업장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본의 다단계 하청화 전략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보다 작은 규모로 축소해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하청화를 통해 물량 변동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대자본의 전략은 산업단지에서 구현되고, 산업단지의 그나마 큰 공장들은 다시 그 안에서 재하청화를 통해 원청 대자본으로부터의 물량 변동에 대응하려 한다. 또 기업 규모를 인위적으로 축소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파견, 하청 등으로 외주화하는 것이고, 특수고용화하거나, 최근에는 3.3으로 위장한 무늬만 프리랜서인 경우가 산업단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조건들은 영세소기업이 밀집한 산업단지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미약한 원인으로 분석되곤 한다.
이런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와 ‘실질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노조법 개정은 한편으로 매우 가까운 문제다. 산업단지 내에서도 사내하청을 늘리고 라인별로 생산시설을 쪼개는 등의 외주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은 바로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문제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조법 개정이 산업단지 노동자들과는 먼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산업단지의 작은 사업장들은 대자본의 하청‧부품업체이지만 ‘실질사용자’에 이르지 않는 수준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전체의 흥망성쇠를 지배하는 것은 대자본이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등에 대해 법원의 판단이 요구하는 수준 정도의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대자본의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지우려는 사회적 노력이 있다. 예를 들어 ‘공급망실사’가 그렇다. 기업이 자신만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기업활동으로 연결된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점검하는 ‘공급망실사’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기업이 사회에서 그 책무를 다하도록 요구하고, 노동법상 책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것을 문제시하고, 기업은 노동법상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런 책임회피가 만들어 낸 것이 작은 사업장의 열악한 실태이고, 그런 책임회피가 만들어 낸 인권침해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것이 노조법 2‧3조 개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으로는 아직은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권리를 모두 담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노조법 2‧3조 개정의 취지가 온전히 살아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해 나가는 시작이기에, 노조법 2‧3조 개정의 취지가 제대로 살아나 노동현장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 산업단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의 사회변화도 이끌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12월 9일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월담활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 이주노동자 권리수첩(웹버전) 발간 (0) | 2025.12.16 |
|---|---|
| [월담의 한 달] 2025-10,11 합본호 (0) | 2025.11.26 |
| [긴급성명]이재명 정부가 사람을 죽였다! 지금 당장 미등록이주민 정부 합동 단속 중단하라! (1) | 2025.10.29 |
| [성명서]이재명 정부 하에서도 끊이지 않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인간사냥 강제단속 즉각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 체류를 보장하라! (0) | 2025.09.29 |
| [월담의 한 달] 2025-08,09 합본호 (0) | 2025.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