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으러 오지 않았다. 사람이 왔다.

지난 3월 10일 새벽 2시 40분 경, 경기도 이천의 자갈가공업체인 중앙산업에서 일하던 23살 베트남 국적의 이주노동자 응웬 반 뚜안 님이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래 3명이 일하던 야간조는 한명의 동료가 퇴사했지만 인원이 충원되지 않았고, 2인 1조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이는 것을 막아줄 방호울이나 방호 덮개는 없었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긴급하게 기계를 정지시킬 풀 코드 스위치도 없었습니다. 위험이 닥쳤지만 그 넓은 현장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 하나 없이 故뚜안님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중대재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72.4%가 고용되어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조차 적용되지 않고 있고, 정부의 대책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故뚜안님이 사망하고 이틀 후인 3월 12일에도 전북 부안의 플랜트 공장에서 일하던 24살 태국 국적의 이주노동자 티타완 님이 기계에 목이 끼어 숨졌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특히 질식이나 기계 끼임 사고, 깔림 사고 등 동일한 유형의 사망사고로 희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기본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작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위험한 작업방식과 지시, 위험한 노동환경은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故뚜안님의 사망사고 이후 경기지역의 시민사회, 이주인권, 노동조합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엄중한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중대재해를 전문으로 하는 거대로펌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고용노동부 역시 제대로 된 수사나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故뚜안님의 유족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했고, 故뚜안님의 시신은 지난 3월 19일 장례를 진행하고 화장을 해서 지인의 품에 안겨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경기지역 시민사회는 故뚜안님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제대로 해결할 때까지 힘을 모아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합니다. 그중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정주노동자보다 3매 이상 산재사망률이 높습니다. 일터의 위험의 외주화와 죽음의 이주화를 막기 위해 전 사회적인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관련기사>
“국가가 허가한 일터에서 스물셋 청년이 죽었다”(2026-03-24 뉴스타파) https://newstapa.org/article/b8Pz3
“23살 이주노동자 뚜안 숨진 사업장 현장 훼손 ... ‘왜곡 수사 우려’”(2026-03-25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51502001
■ 직장 내 괴롭힘, 작은 사업장일수록 많아

지난해 5명 미만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2천907건에 달한다는 언론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상시근로자 5명 미만 사업장은 법률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신고가 쏟아졌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와 3) 시행 뒤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법률 시행 이후인 2019년 직장내 괴롭힘 관련 신고는 530건(근로기준법 위반 신고 대비 46.4%)이었지만 이듬해인 2020년 1천87건(59.7%)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2021년 1천24건(50.4%), 2022년 1천725건(71.4%), 2023년 1천916건(73.3%), 2024년 2천265건(71.9%)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7개 연도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위반 신고 1만6천998건 가운데 1만1천454건(67.4%)가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법률상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지 않음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 만에 전체 근로기준법 위반 3건 중 2건을 차지한 것입니다.
이 사건들이 모두 5명 미만 사업장이라는 형식적 이유로 기각, 각하된 것은 아니고 지난해 2천907건 가운데 정부는 조사를 펼쳐 16건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29건을 개선 지도했다고 합니다. 이들 신고 건은 신고 접수 뒤 진정서나 행정 전산 시스템 상 기입된 노동자 수와 관계없이 정부가 사건별로 실제 상시근로자수를 조사해 다행히 5명 이상 사업장으로 확인된 사례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보호는 부실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고 뒤 사실상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은 건은 △위반 없음 971건 △기타종결 1천635건 △불기소 11건이고 245건은 처리 중입니다. 게다가 만연한 가짜 3.3(사업소득세 3.3% 징수) 사업장까지 감안한다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노동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 등으로 보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5인미만 사업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어떤 노동권도 갖지 못하는 현실,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나요?
<관련기사>
“근기법 위반 신고 76%가 직장내 괴롭힘, 작은사업장 노동자의 ‘고통’”(2026-03-17 매일노동뉴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219
■ 성별 임금차별 줄인다는 ‘성평등 임금 공시제’, 작은 사업장 여성들에게는 무용지물

2024년 기준 한국의 여성 고용환경 지수(WIW)는 49.1점으로 33개 국가 중 32위를 차지했습니다. '여성 고용환경 지수'가 처음 발표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최하위권을 여전히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직장 내 성평등'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금 성차별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입니다. 남성 노동자가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 노동자는 71만 원을 받는다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꼴찌입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래 단 한 번도 꼴찌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성별 임금 격차는 고용률, 특히 '정규직 고용률'과 관련돼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남성 노동자의 정규직 고용률은 88.3%인 반면, 여성 노동자의 정규직 고용률은 75.2%에 그쳤습니다. 이제 막 일자리를 찾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의 정규직 고용률은 성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30대부터 격차가 벌어집니다. ‘경력단절’ 때문입니다. 출산 후 일터로 돌아오거나 재취업하는 여성들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임금에서 저임금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피하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전한 '유리천장'도 성별 임금 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KCGI자산운용이 국내 주요 상장기업 360곳의 성평등 지표를 분석한 결과, 여성 직원이 임원으로 선임되는 비율은 0.4%였습니다. 남성 직원의 임원 선임 비율은 1.6%였습니다. 남성 직원 1000명 중 16명이 임원으로 올라갈 때, 여성은 4명만 임원으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심지어 여성 사내이사가 한 명도 없는 기업은 80%가 넘었습니다.
이런 성별 임금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성평등 임금공시제(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한다고 나섰습니다. 이재명 정부 이전인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2028년 시행’을 못 박았지만 경영계의 거센 반발에 밀려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아예 임금공개 의무방침을 없애면서 통계조차 잡지 못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이재명 정부가 연내 추진하겠다는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는 법적으로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 계열사) 중 300인 이상 기업, 그 외 공공기관과 지방공사공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국 여성 노동자 다수가 1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500인 이상 기업만을 공시 대상으로 한다면 대다수 여성의 임금 실태가 여전히 알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단순 공개를 넘어 '원인 파악'과 '개선 의무' 조치가 함께 해야 합니다. 실제로 프랑스는 100점 만점의 '남녀평등지수'를 매겨 75점 미만이면 시정 의무까지 부과한다고 합니다.
직장 내 성평등과 임금차별을 없애기 위한 첫 단추로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시행한다면, 그 취지에 맞게 의무화 대상 사업장을 확대하고 확실한 상벌규정도 만들어야 합니다.
<관련기사>
“男 100만원, 女 71만원…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李정부는 다를까”(2026-03-21. 한국일보) https://v.daum.net/v/20260321043125912
“여전한 성별 임금 격차…'성평등 임금공시제'의 무게”(2026-03-09. SBS 뉴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8470004
■ 노동감독권의 지방정부 위임,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지난 3월 23일, 행정안전부와 고용노동부는 전국 17개 광역 자치 단체와 중앙지방정책협의회를 갖고 “노동 감독 권한 지방 위임 관련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12일 국회는 중앙 정부가 갖고 있던 ‘노동 감독’ 권한을 오는 11월부터 지방 정부에 일부 위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동감독관 직무집행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노동감독관은 기존의 근로감독관의 명칭을 변경한 것으로 기업 등이 노동 관련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특별사법경찰 신분입니다. 행정처리 뿐 아니라 압수수색과 피의자 소환조사, 송치 등의 사법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국가 사무로, 노동부 소속 노동감독관 4100명가량이 활동하고 있는데 법 제정으로 앞으로 지방 정부도 감독관을 별도로 뽑아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경기도를 비롯한 17개 광역 자치 단체는 올해부터 3년간 1800명을 지방 노동감독관으로 선발해 상시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 감독을 맡을 예정입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 정부가 사각지대에 있는 소규모 취약사업장의 임금 체불, 산업재해 등에 대한 노동 감독을 하면 노동자 권리 보호 효과가 배가될 것이란 게 노동부 설명입니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최근 산업재해와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노동정책 전반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변화가 지역현장에서 실질적인 보호로 이어지기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노동감독권의 지방정부 위임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습니다. 경영계는 현장 혼란의 가중이나 기업에 새로운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로 노동계도 반대했는데요, 노동감독의 통일성과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노동감독의 숙련도가 중요한데 이것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감독관을 증원하지 않고 단순히 인력과 권한만 넘기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탈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자체의 ‘셀프 감독’, 노동행정 체계의 부재, 지역 기업과의 유착 역시 우려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앙행정의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지방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에 걸맞는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보완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관련기사>
“‘노동 감독권’ 지방정부에 위임 절차 착수”(2026-03-25 기호일보) https://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7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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