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 그 담을 넘기 위한 발돋움을 시작하다.
하루의 절반이상을, 한 달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내지만 정작 이곳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어서 기회만 된다면 떠날 준비를 합니다. 떠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현장을 바꿔내야 진짜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현실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최저임금으로 대표되는 공단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야합니다. 자본이 쳐 놓은 그 벽을 넘어 함께 만나서 우리들의 권리를 다시 찾아와야합니다. 그래서 월담은, 우리도 함께 모여서 움직이면 가능하다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해 볼 참입니다. 꽃피는 춘삼월, 수다 떨기 딱 좋은 날에 월담이 기지개를 켰습니다.
첫 번째 수다, 선전전
사실,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서 전 늘 길을 잃습니다. 심각한 길치인 탓도 있지만, 몇 년을 일하고도 아직도 여기가 어딘지 헷갈릴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 만큼 넓고 수많은 공장들로 빽빽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공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적고, 공단 거리를 걷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공원에는 휑한 바람과 집나온 강아지만 머물다 갈 뿐입니다.
그동안 월담에서는 공단 안에서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수차례 조사를 다녔습니다. 점심시간에 공단의 골목, 골목을 누비며 식당이 어디에 많은지 사람들이 어디로 많이 이동하는지를 찾아다녔습니다. 아침시간 통근버스를 따라다니며 어디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지도 알아봤습니다. 타 지역에서 이동해 오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지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공단 안으로만 들어가면 사람들은 마술처럼 사라졌습니다. 20만 명이 일한다는 반월시화공단, 그들은 과연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요.
월담의 선전전은 매월 초에 집중적으로 진행됩니다. 3월 선전전은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진행했고, 총 17명의 동지들과 17곳에서 3천장을 배포했습니다. 그동안 조사를 통해 확인된 장소를 중심으로 하고 그 외에 확인해봐야 할 곳을 몇 군데 선정해서 점심시간과 저녁 퇴근시간을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역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었습니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역시 아파트형공장에 있는 대형식당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퇴근시간에는 안산역 등에서 진행했는데, 선전물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소화되었습니다. 선전전을 하면서 내내 아쉬웠던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곳이 안산인데 그들을 위한 선전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특별히 배제하고자 한 의도는 없었지만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내용은 몇 차례 기획회의를 통해 고정꼭지 4가지를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공장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과 생생한 현장이야기를 중심으로 써내려갈 <공장담벼락에 누가 쓴 이야기>, 그 달 월담이 핵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가는 <담쟁이 편지>, <빨간펜 노무사>는 일하면서 알면 좋을 법률상식을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월담의 한 달>을 소개하고 월담문화제를 광고하는 것으로 선전물을 채웠습니다.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3월초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주머니에 손을 빼기 매우 귀찮아하며 지나치는 사람 때문에 상처 아닌 상처도 받았고, ‘월담’이라는 이름 뜻을 궁금해 하면서 불교에서 나오셨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즉석해서 상담을 해오는 사람도 많았고, 월담이 하는 일에 동의하고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연락해 오는 대학생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있었습니다. 실제 이분들은 이후 직접 찾아오시기도 했었습니다. 월담의 활동을 광고해 주겠다는 광고회사 사장님, 안산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을 오랫동안 해 오셨다면서 법률상담을 같이 해주겠다는 변호사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고 지나친 사람들이 지금 당장 월담으로 함께 하진 않겠지만 꾸준하게 말 걸기를 시도 한다면 아마 그들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매월 초, 반월시화공단으로 오십시오. 함께 광활한 공단을 누벼 봅시다. 가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숨은 사람들 찾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 3월 선전전 모습
두 번째 수다, 문화제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들의 희망을 담다’라는 주제로 월담의 첫 번째 문화제가 3월 14일 금요일 저녁 안산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문화제 시작 전 6시부터는 지나는 시민들을 위해 따뜻한 원두커피와 명함에 사탕을 함께 포장해서 나눠드렸고, 노동법 상담과 자녀심리상담도 진행했습니다. 저녁 7시, 멋진 랩퍼 사루타의 공연을 시작으로 동서공업해고자 황영수 동지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가 이어졌고, 월담의 전속밴드를 자처한 담쟁이밴드의 신들린 연주는 정말 최고였다고 개인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최은실 노무사의 통상임금과 취업규칙이야기, 현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 이 모 씨의 이야기, 이미숙 월담지킴이가 월담을 소개하는 것까지 한 시간 반 동안의 문화제는 나름 즐겁고 신나게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문화제를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주신 사회자 고동민 동지의 역할이 매우 컸음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처음 진행된 문화제인지라 시작은 약간 삐걱거리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원두커피를 대접하겠다는 일념 하에 무려 300인분의 커피를 볶고, 갈고, 내리는 과정을 모두 100% 수작업으로 처리하면서 문화제를 총괄해야 하는 담당자는 무려 40분이나 늦게 현장에 나타났고, 발전기를 빼고 음향이 오는 바람에 급하게 발전기를 구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메인 현수막과 홍보를 위한 현수막이 모두 늦게 오면서 지나는 시민들이 과연 이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를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집회가 많지 않은 장소여서 마이크소리에 깜짝 놀란 주변 상인들이 돌아가면서 항의를 해오기도 했고, 철도직원이 나와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문화제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특히, 100% 수작업으로 내린 원두커피는 인기가 만점이었습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분들이 많았고, 사탕을 넣어서 포장한 월담명함은 순식간에 동이 나기도 했습니다. 준비한 의자 50개 중 처음에는 소박하게 30개만 배치해놨었는데, 조금씩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50개를 다 사용하고도 자리에 앉지 못한 많은 분들이 광장 곳곳에서 서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문화제가 끝나고 다음날 어떤 분은 월담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발마사지기와 운동기구를 기증하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후에는 아직까지는 낯설어하고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공연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소근 소근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문화제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만 하는 문화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배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벼룩시장도 해보고, 사진을 찍어주거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월담문화제는 공단노동자들과 ‘권리와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매월 두 번째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 안산역에 가면 그들이 있더라.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나와 공감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더라. 뭐 이런 믿음을 주는 공간으로서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조금씩 우리게도 ‘권리’와 ‘희망’이 있음을 확인해 나가고, 함께 모여서 움직이는 것이 바로 희망임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기를 소박하게 바래봅니다.
▲ 3월 문화제 모습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질라라비> 128호(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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