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여전히 노동자가 죽고 있다.
노동건강연대의 발표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22년 1월 26일) 직전인 1월에도 67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으며, 법 시행 이후인 2월에도 49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언론들은 어느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처벌받는 첫 번째 ‘본보기’가 될 것이냐를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떠들어댔다. 법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처벌’만 남은 꼴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업무 중 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보호 의무 및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기업에 강력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기업들이 스스로 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안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지만, 22년 2월에만도 산재 사망자가 46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산재 사망사고가 줄었다는 자축을 일찍부터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법 시행 직후 가장 산재사고가 빈발하는 건설업을 비롯한 산재사고 다발 사업장을 중심으로 일시 휴업까지 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휴업으로 인한 사고감소인지, 기업에서 제대로 조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용자와 기업이 처벌받는 것은 억울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의 사망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첫 번째로 처벌될 것인지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어떤 노동자도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어떤 기업이 제대로 된 보호를 해태하고 있는지 살펴야 할 때이다.
관련기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 49명이 죽었습니다(오마이뉴스, 22.3.4.)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15202
관련기사>> 고용당국, 현대엘리베이터 이례적 기획감독…배경은(뉴시스, 22.3.1.)
https://newsis.com/view/?id=NISX20220228_0001776479&cID=10201&pID=10200
○ 코로나 확진에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서울에 한 중견 회사를 다니는 A씨는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는 코로나 증상이 가벼우면 업무를 계속하면 좋겠다며 업무용 노트북을 퀵서비스로 배송해 줬다. 오미크론의 확대로 자가 격리와 재택 치료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A씨처럼 많은 노동자는 치료 중에도 재택근무를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재택근무 강요는 중증인 경우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 사업장에서는 PCR 검사를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치료가 없이 자가 격리 중 업무를 지속하면 코로나 후유증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의 처지에서도 코로나 확진 시 임금이 제대로 나올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유급병가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아프면 쉴 권리가 법률상 보장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코로나 첫해인 2020년부터 병가제도를 법률상 마련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유급 병가제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만 자체적인 유급병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반월시화공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산시의 경우 취약 노동자 병가 소득손실보상금을 지원한다고 밝혔으나, 대상이 일용직 등 일부 직종에 한정되어 있었고, 예산이 부족해 제대로 보상받는 노동자가 적다. 코로나 19 뿐만 아니라 업무 외의 사유로 인해 아프고 다치는 노동자가 많은 만큼, 지자체 또는 기업 자체의 능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조속히 입법적으로 아프면 쉴 권리, 유급병가권이 마련되어야 한다.
관련기사>> “확진되니 노트북을 퀵으로”…재택 ‘근무 강요’, PCR 검사 금지도(한겨레, 22.2.28)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2908.html?_fr=gg#cb
관련기사>> 안산시, 소득손실 보상금 추가 예산 확보 절실(21.10.13)
http://www.d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9883
○ 투표일에도 여전히 출근하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2022년부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사업장에서는 소위 ‘빨간 날’을 법정 유급휴일로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대선이 치러진 3월 9일에도 출근해야 했다.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지정된 투표 시간 내에 투표소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왜 어떤 노동자들은 대선일에도 출근해야만 했을까? 바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유급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55조(주휴일)가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는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사업의 영세성과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어려움을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임금, 연차, 주휴일 등 몇 개 조항의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그렇다면 5인 미만 사업장은 얼마나 될까? 2019년 기준으로 1~4인 규모 사업장은 1,320,269개로 전체 사업체 수의 62%에 달하며, 상용근로자 수는 1,574,382명(전체 노동자의 18.5%)에 달한다. 즉, 근로기준법은 전체 노동자의 노동 기본법이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약 18%에 대해 다수의 규정 적용을 포기하고 있다. 누군가는 사전투표를 하면 되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전투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편의 행정일 뿐이지, 국민으로서 보장된 참정권의 행사인 투표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는 임금, 연차, 권리보장 등에 대해 전반적인 권리 차별을 포함해 성별,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균등한 처우(근로기준법 제6조) 원칙에도 반한다.
반월시화공단은 특히 중소규모 사업장이 많다. 따라서 이번 대선 일에도 투표하지 못하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사업장 규모가 다르다는 사정으로 다른 노동자와 다른 대우를 받는 차별은 당사자에게 심한 박탈감을 불러온다.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관련기사>> “대선일에도 출근… 투표권 보장 못 받아” (세계일보,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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