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게 일이냐" 쉴새 없이 일해도 모욕당하는 작은 공장 노동자의 삶
[일터에 쉼표를] ② 쉼, 그 당연한 권리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노트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끼니도 챙겨야 하고, 작업하며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노동자의 휴게시간을 법으로 보장하지만, 정작 휴게시간에 맘 편히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공단의 현실이다. 사업장 내 휴게공간 설치를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되어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설치기준을 규정할 시행령에서 작은 사업장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영세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넘어, 모든 노동자에게 쉼을 권리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이하 월담노조)은 '일터에 쉼표를' 새기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 쉼표의 의미를 함께 나누길 바라며 월담노조와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
'넣고 빼고만 하면 되는데 그 까짓거에 쉬고 자시고가 어디 있냐? 안 그래?' 23대 고속 단조설비들이 내뿜은 오일미스트가 자욱하다. 저마다 가장 고통스러운 굉음을 내지르겠노라고 쉼 없이 쇠를 두드린다. 비틀어 막은 귀마개 틈으로 들리는 건 쇠 때리는 소리뿐이다. 작업반장은 미간을 잔뜩 찌그려 모으고, 46밀리 스패너를 꼬나 잡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가 제발 알아듣고 정신을 차리도록 고함을 쳐준다. '그래? 안 그래?'
단조로운 반복노동에는 휴식이 따로 필요 없으니, 틈날 때 잠깐 담배나 태우고 오면 되는데, 왜 자꾸 캐묻느냐는 소리다. 시커먼 가공유 뚝뚝 듣는 46밀리가 중앙출입문을 가리키는데, 오냐, 기름 찌든 내 허파나 썩히고 올 밖에.
사실 이전 현장에서는 그 담배조차 힘들었다. 좌우로 8대씩 자동로봇 16대가 쉴 새 없이 제품을 뱉어내는데, 그걸 혼자서 봐야 했다. 할 거만 다 하면 얼마든지 쉬라고 했지만, 그럴 리가 있나. 16개의 경광등이 앞다투어 번쩍거렸다. 마침 약 올리듯 컨베이어까지 주저앉아, 제품들이 바닥에 줄지어 곤두박질칠 때는, 정말 숨이 막혔다.
니가 하는 거 아니고 로봇이 하는 거잖아
거기나 여기나 휴식시간은 분명히 있다. 2시간 일하고, 10분 쉬도록 계약서에 떡하니 적혀 있었다. 단, 현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로봇과 설비는 단 1초도 쉬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 돌아오지 않느냐? 소용없다. 처음에는 쉬러 가며 기계를 껐다. 관리자는 어떻게 알고 나타나서는 다시 기계를 돌렸다. '일은 로봇이나 기계가 하지 너희가 하냐'는 논리다. 언젠가부터는 알람 경광등을 지켜보고 번(番)을 서는 동료가 생겼다. 그이가 손가락으로 설비 호수를 일러주면, 저쪽에서 담배 피우던 담당 작업자가 와서 조치하는 식이다. 번은 보통 젊은 축이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풋내기들이 서는데, 불러도 안 오면 자기들이 들어갔다. 관리자가 용케 알고 쫓아왔던 건, 사무실에서 카메라로 보고 있다가, '야, 몇 호기 섰다'라고 카톡으로 짚어주기 때문이었다.
자기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의 애착인지, 제 설비가 울면 또 달래러 들어간다. 자동으로 돌다 말썽이 생겨 멈추면, 쉬고 들어가서 그걸 다스리는데 또 품이 든다.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게 차라리 편한 걸까?' 스스로 눙쳐버린다. 들락거리며 커피 한 잔, 담배 한 모금 하고 있으면, 뒤통수에 대고 '그까짓게 일이냐'며 평가절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에 똬리 틀고 앉아 웹서핑이나 하다 주워섬기는 소리라, 분별없고 상스럽기가 아주 제법이다. 기름 안 묻히고 뽀송뽀송한 것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일이라, 휴식시간도 4분, 5분 별스럽지 않게 깎여나간다. 제 몫을 못 쉬고 심사가 어긋나면, 우리끼리 서로 애먼 동료나 잡았다.
상위업체로 말하자면,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다. 기한에 맞추고, 또 그 구미에 맞추려면 축나는 놈들이 누군지는 뻔하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시원하게 뱉어놓고, 사지 축 늘어트려 한 10분, 20분 달게 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다.
휴게실 생기면 쓸 수는 있고?
이제 8월이면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사용자 측은 휴게실을 안 놓을 수가 없다. 곰진 일이다. 관리자들은 벌써 야단이다. 밖에 만드냐 안에 만드냐. 문을 다냐 마냐. 커피머신은 공짜냐 가짜냐. 사뭇 진지한 낯짝이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시큰둥하다. 휴게실에 뭐가 있었으면 좋겠냐는 내 물음에 동료들은 다 똑같이 답한다. '뭘 놓으면 쓸 수는 있고?'
법 개정 얘기가 나오기 전이다. 의자라도 놔 달랐더니 부서진 팔레트를 집어 던지며 '요거 뜯어서 만들라'고 했다. 눈꼬리 입꼬리가 요사스러워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자들이, 휴게실 생겼다고 달라질 리 만무하다는 거다. 내포장 스티로폼 모아 만든 방석이나, 주차장 경계석 따위에 앉아있다가 쫓겨 들어가나, 휴게실 문지방에서 안전화 벗고 입맛만 다시다 쫓겨 가나, 무어가 다른가. 어차피 쉬는 시간에도 기계와 로봇은 돌아간다. 휴게실이 새로 생겨도 현장 사이클은 변하지 않을 테니, 달라지는 게 없다는 생각들이다.
하루는 고사하고 반나절 만에도 바뀌는 상위업체 출하계획은, 사용자 측이 우리를 다스리기에 좋은 구실이 된다. 그러니 그런 상황이 없어야 제대로 쉬지 않겠는가. 쉬는 시간 자체도 매번 흐지부지하고 지키지 않으니, 휴식시간 설비 운전 및 작업 금지를 어떤 식으로든 못 박아야 쉬지 않겠는가. 물었으니 대답이야 했지만, 동료들은 다 치우란다. 비죽하게 나온 입으로 돌아서는데, 내가 생각해도 우리 같은 작은 사업장은 별스러울 게 없다. 몇 명 규모 밑으로는 적용 안 되는 조항, 이런저런 단서들이 마치 우리 같은 영세사업장을 노리고 일부러 달아놓은 것처럼 시행되지는 않을까.
오히려 휴게실을 통제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불량을 휴게실에 감춘다고, 여성 휴게실에 몰래 들어갔던 천하에 쥐새끼 같은 인간을 잊지 못한다. 그 인간은 여성 노동자들이 쉴 때마다 휴게실 문간에 와서는 청소 번이 누구냐며 오살 맞을 간섭을 했었다. 지금 현장이라고 다를까. 커피머신 청소 안 한다며 번을 정하라느니, 사줬으면 관리를 잘하라느니, 신물나게 참견할 게 분명하다.
가장 작은 규모 사업장 노동자들도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기왕에 개정되는 산안법의 의미에 흠을 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 그 휴게실 설치에 개입할 힘이 없는 것, 그 사용을 위해 생산을 통제할 힘이 없는 것, 그 운영을 우리 마음껏 할 힘이 없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규모가 큰 사업장은 노동조합이 개입하고 통제하겠지만, 우리처럼 작은 사업장은 멍하니 쫓아가다가 당하기 마련이다. 규모에 따른 차등 없이 쥐콩 만한 사업장도 전부 적용해야 한다. 관리 감독도 촘촘하게 해서, 갖가지 꼼수로 휴식시간을 느슨하게 운영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못 박아주길 바랄 뿐이다. 농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용자 측이 지키지 않으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망신하도록 부탁한다. 피 토하고 나자빠지는 걸 봐야 '어마, 뜨거라' 하고 엄히 지킬 게 아닌가. 지금 같아서야 대충 궁뎅이 몇 번 두드려 주는 꼴이니. 그 덕분으로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젊은 목숨이 스러진다.
솔직히 법이 우리가 벼린 칼도 아니고, 큰 기대 안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그뿐이다. 다만 기억해주기 바란다. 모두 잠든 밤에도 저 자욱한 오일미스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계에 물려 손이 찢긴 채 비명을 질러도, 도무지 들리지 않는 참담한 곳이지만, 서로의 등에 기대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노조 없는 작은 사업장이지만, 더 나은 일터를 위해, 이 악물고 볼트를 죄고 또 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프레시안 / 2022-01-20 08:35:08
기사 원문 보기 >>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2011816402497823#0D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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