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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담활동/기획사업

[연속기고] '일터에 쉼표를' ① '쉼'이 '권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싸움

노동자의 휴식, 누군가의 '배려'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연속기고] '일터에 쉼표를' ① '쉼'이 '권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싸움

엄진령 월담노조 운영위원/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끼니도 챙겨야 하고, 작업하며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휴게시간을 법으로 보장하지만, 정작 휴게시간에 맘 편히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공단의 현실이다. 사업장 내 휴게공간 설치를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되어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설치기준을 규정할 시행령에서 작은 사업장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영세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넘어, 모든 노동자에게 쉼을 권리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이하 월담노조)은 '일터에 쉼표를' 새기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 쉼표의 의미를 함께 나누길 바라며 월담노조와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권리 밖의 노동자들

일하는 형태가 다양해지고, 기존의 노동관계에서 벗어나는 고용형태가 늘어나면서 노동법은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등 정형화된 노동형태를 벗어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쉽게 노동법의 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노동관계에 따른 기본적인 권리에서조차 배제한다. 짧은 시간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해서는 연차휴가 등을 적용하지 않는다. 가사노동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 배제도 여전하다. 지난해 제정된 가사노동자법에 따라 일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한해서만 노동자로 인정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부여한다. 결국 정형화된 형태에 들어맞지 않는 노동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노동자로서의 권리의 보장을 부정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법률인 근로기준법, 그 이면에 놓인 권리배제적 성격이다.

이처럼 오래된 권리 배제 가운데 기업 규모에 따른 권리 차별,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가 있다. 상시 노동자 수가 4명 이하인 작은 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을 제외한 대부분이 적용되지 않는다. 취업규칙 작성 의무도, 게시 의무도 없고, 부당해고 금지에 관한 조항도 적용되지 않고, 노동위원회 등의 행정절차를 이용할 수도 없다. 휴업수당도, 법정 노동시간 규정도, 연차유급휴가도 적용이 안 된다. 그뿐인가.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도 적용되지 않고, 공휴일법도 적용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도 4명 이하인 경우에는 적용이 배제된다. 그러니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거나 사업장의 임금, 휴게 등의 적용에 대해 의문이 있을 때 노동자가 상담을 해오면 갑갑할 뿐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차별되는 권리

사업장 규모에 따라 권리를 차별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개정되는 법률은 늘 그렇듯 공공부문, 대기업부터 적용되고, 시간차를 두면서 점차 확대 적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개선되는 법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닿아 결국 가장 작은 규모인 4명 이하 일터에는 미치지 못한다. 법이 개악되고 후퇴하는 경우 큰 사업장은 그나마 노조가 있어 단체협약 등으로 방어할 수 있지만, 작은 사업장에는 개악된 법이 그대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법이 적용되는 동안 사업주들은 기업규모를 조정해 법 적용을 회피할 수도 있다. 4명 이하인 경우만이 아니라, 100명, 50명, 10명 등 기업 규모에 따라 법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은 계속해 기업의 규모를 조정해 법을 지연시키거나 제도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돕는다.

노동자의 권리가 모두에게 보편적인 권리가 되지 못하고 기업의 크기에 따라 차등되는 구조 속에서는 그 권리의 지속적 박탈을 막아내기가 힘들다. 그렇게 권리에서 최종적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4명 이하 규모의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2018년 기준으로 모두 455만 명 가량 된다고 한다. 전체 노동자의 28% 수준이다. 그리고 월담노조가 발 딛고 있는 반월시화공단은 이처럼 작은 규모의 사업장이 밀집되어있는 곳이다. 시화노동정책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반월산단은 56.2%, 시화산단은 67.4%가 4명 이하 사업장이라고 한다. 월담노조가 만나는 노동자 두 명 중의 한 명은 최소한의 기본권에서조차 배제된 노동자라는 뜻이다.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이 노동자들과 함께 월담노조는 쉴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충분한 휴식은 안전한 일터의 한 몫을 차지하는 중요한 문제다. 일 중간의 휴식,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 작업량에 쫓기지 않는 건강한 노동, 그저 좀 더 일해서 조금이라도 많은 임금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서는 것. 그 모든 것이 조화로이 맞물려야 작은 사업장이 밀집된 산업단지 공단에서도 '쉼'이 '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벅찬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월담노조는 '쉼'이라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그 싸움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지난해 휴게실 설치 의무가 법제화되고, 정부는 휴게실 설치 의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 중이다. 그 논의에서 또다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배제되고 있다. 휴게실 설치 의무화의 기준은 10인 이상, 20인 이상 등으로 논의되어 당연히 반월시화공단의 절반 이상 노동자들은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 공단처럼 작은 사업장이 밀집된 경우에도 쉴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공동의 휴게실을 설치하도록 하거나, 산업단지에 대한 권한을 갖는 산업단지공단이나 지자체 등에 책임을 부여하여 공공의 휴게시설을 확충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찾는 것에는 소홀하고, 기업 규모에 따라 줄 세워서 가지 쳐내는 것에만 익숙한 것이 법 적용의 현실이다.

그런 익숙함이 오랜 시간 동안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배제해 왔다. 보편적 권리가 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 낯설어하는 정부, 작은 사업장에 면책을 주는 것에만 익숙하고, 행정적 노력을 투여하기를 기피하는 정부의 행태가 그 오랜 권리 배제를 고착시켜 왔다. '쉼'이 '권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싸움, 월담노조가 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맞서고자 하는 것은 그저 '작다'는 상태가 아니라 바로 그 오랜 법적 관행이며, 행정의 나태이다.

▲ 월담노조에 진행 중인 '일터에 쉼표를' 캠페인. ⓒ월담노조

 

프레시안 / 2022-01-19 08: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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