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회에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30일간의 도보행진에 나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종걸 두 인권활동가의 여정을 담은 옴니버스 다큐 ‘평등길 1110’ 상영과 ‘평등 수다회’가 2월 19일 <페미니스트 북카페 펨femm>에서 열렸습니다. 상영회와 이야기 자리에는 “차별 말고 평등, 혐오 말고 존중”을 외치고 싶은 안산 지역의 단체와 개인들 30여 명이 모였는데요. ‘평등길 1110’에 나온 비정규직, 이주, 여성, 장애, 성소수자 등 여러 가지 결을 함께 지닌 사람들이 겪은 차별의 경험들은 이날 ‘평등 수다회’ 패널로 함께한 월담노조, 지구인의정류장, 페미니스트 북카페 펨, 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기도 안산이라는 지역 공동체 안의 고민과 맞닿을 수 있었습니다. ‘평등길 1110’에서 미류와 종걸이 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의 무수한 차별의 경험들은 스크린 밖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 자리였습니다.
‘평등 수다회’에서 나눈(+그날 못다 한) 월담노조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
1. 자기소개와 활동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노조 사무국장 임용현이라고 합니다.
월담노조는 작년 10/16 창립총회를 열었는데요.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월담노조 전에는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이라는 이름으로 안산/시흥 지역에서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를 고민하고 의제화하는 활동을 해왔어요.
권리찾기모임에서 노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된 이유가 아마 궁금하실 텐데요. 짧게 말씀드리면, 권리찾기모임 8년간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월담노조가 공단 지역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지원조직에서 당사자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통해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겠다는 고민인 거죠. 물론 문제를 단순히 드러내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되겠죠. 일하는 사람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작은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박탈하거나 유예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활동도 앞으로 해 나가려고 합니다. 특히 사용자나 지자체에 책임을 묻고 변화를 촉구하는 일을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지 밑그림을 차근차근 그려 나가고 있어요.
2. 어떤 차별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저는 아무래도 월담노조에서 활동하니까, 공단에서 일하는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무수히 많은 차별을 겪고 있거든요. 우선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조차 적용을 받지 못해요. 근로기준법이란 게 모든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법이잖아요? 일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 노동조건은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기본법인데, 이걸 작은사업장은 경영 여건이 열악하고 법 준수 여부를 감독할 근로감독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정부가 전면 적용을 안 한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이유죠. 헌법재판소도 뭐라고 했냐면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해야”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이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위해 점진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나가고 있다”면서 부득이한 상황이라고 말을 해요. 무려 헌법재판소가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결국 작은사업장 경영 여건과 행정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일단 참고 기다리라는 말이잖아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번번이 뒤로 미루는 태도랑 대체 뭐가 다를까요?
그리고 두 번째는 최근에 뉴스에서도 많이 보도된 내용이기도 한데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27일부터 시행이 됐잖아요. 그런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회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법적용을 아예 제외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거예요. 구체적으로 보면 50인 미만은 중대재해법 시행시기를 2024년으로 유예한다는 거고, 5인 미만은 아예 적용제외를 시켰어요.
작은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근로기준법, 중대재해법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직장내괴롭힘을 당해도 법적으로 구제신청 할 수도 없고, 주52시간 상한제나 대체공휴일도 적용받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권리를 지키기 가장 어려운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을 법제도가 앞장서서 차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일터에서의 차별을 용인하는 것이 아마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부분 않을까요? 차별적인 제도를 지속하는 국가 때문에 나의 취약한 권리 상태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나 희망이 덧없는 것으로 돼버리니까요.
3. 이번 선거 할 말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문제는 고사하고 아예 노동의 문제가 이야기되지 않는 현실이 저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노동 없는 대선’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시잖아요. 특히 이번 20대 대선에 나온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을 보면, 이전 촛불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약속했던 모습에서 아주 크게 퇴보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표적으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문제에요. 이번 정부 들어서 추진한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공정성 문제로 비화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곳곳에서 야기했잖아요? 임금이나 고용, 안전 문제 등에서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을 공공부문부터 바로잡아 민간으로 확산하겠다는 게 이 정책의 취지였는데요.
그런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걸 두고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이 강하게 반발했었잖아요. 정부는 이런 여론을 핑계 삼아서 어디서는 정규직화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또 어디서는 ‘자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고용안정은 보장하는 대신 노동조건의 차별 상태는 그대로 두기까지 했고요.
일터에 만연한 차별을 없애야 할 정부가 이제는 공정 채용을 들먹이면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을 마치 정규직 일자리를 빼앗는 특권 세력처럼 호도하는 게 가장 기가 막히죠.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고 평등할 권리가 있다는 걸 노동 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삼는 후보들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4. 지역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반차별운동이란?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차별에 기반한 인식이고 행위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감각을 키워나가는 활동을 공동체 안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봐야죠.
월담노조의 경우에는 작은사업장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을 올 한 해 동안 집중해서 펼쳐볼 계획인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복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를 다양한 갈래에서 끊임없이 외치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저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반월시화공단에 캠페인 활동을 나가는데요. 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충분하게 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사업주에게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정부가 시행령으로 적용 대상 사업장 규모를 20명 이상으로 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거든요.
정부나 국회가 제도적으로 자꾸 사각지대를 만들고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전면 적용 대신 일부는 적용하고 일부는 제외하는 방식, 그게 바로 차별인 거잖아요?
고용관계나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법제도에서 어떻게 차별이 공식화되고 있는지를 노동자들에게, 지역 사회에 가시화하는 게 저는 월담노조가 시작할 수 있는 반차별운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5. 차별금지법이 생긴다면?
저는 중대재해법이 제정되고 이번에 시행되기까지 재계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보면서, 차별금지법이 왜 우리 사회에 절실한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재계에서 이렇게들 말했잖아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과도한 기업 규제 때문에 경영 여건이 위축될까봐 우려된다고요.
아니,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일터 환경을 만들라는 게 정말 과도한 요구인가요?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잖아요.
저는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주장이나 중대재해법 때문에 경영 여건이 위축된다는 주장이나 뭐가 다를까요?
차별금지법 제정은 혐오와 차별을 방치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당장 노동자의 죽음이 사라지지 않듯이 차별금지법 제정이 된다 해도 당장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진 않겠죠.
그래도 이 법이 만들어지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에 맞서 싸울 발판,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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