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과 함께 격주로 살펴보는 공단뉴스 (2024. 11. 19. - 2024. 12. 2.)
○ 이주노동자의 기록되지 않는 죽음
지난 2022년 한국에서 최소 3340명의 이주노동자가 숨졌지만, 93.6%는 행정시스템에 최소한의 사망정보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1월 29일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례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를 보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출입국 본부)가 법에 따라 신고접수한 전체 이주노동자 사망자는 2022년 기준 3340명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사망 이주노동자의 기초 신상정보(국적, 성별, 나이, 직업, 사망연도, 의료적 사인, 비자형태 등)를 그나마 구체적으로 기록한 수는 214명(6.4%)에 그쳤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보면,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이나 농협, 수협에 산재 사망 보상을 신청한 169명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가 의무 가입하는 외국인상해보험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한 45명입니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경제적 보상 여부를 따질 때만 사망자 정보가 수집된 셈입니다.
나머지 3126명(93.6%)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3126명 중 755명은 수사기관에 의해 ’주검‘이라는 흔적이 발견된 변사자이고, 나머지 주검조차 모르는 ’기타 사망‘입니다. 즉, 이주노동자의 사망 현황과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통계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연구진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지구) 회원국 중에서도 대한민국은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고용허가제의 경우, 건강검진을 통과해야만 입국할 수 있거든요. 즉, 한국에 체류하게 되는 이주노동자는 신체적·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산재 사망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위험이 2.3배-3.6배 높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장례를 치르고 나면 장례 절차를 밟기도 어렵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국내에 입국하려면 비자·여권 발급 등이 필요한데, 국내 체류 비용 등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험금이나 산재보상 등의 신청도 유족 스스로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법제도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죠. 자국 대사관측이 합의를 종용하거나 산재 신청을 중개하는 사설업체 브로커가 개입해 유족이 부적절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연구지는 보고서에서 “이 같은 체계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얼굴 없는 존재‘로 만든다”며 “그들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온전히 애도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이렇게나 기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니 최소한의 애도도 불가능합니다. 왜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관련기사>
· 기록 없는 이주노동자 죽음 93.6%…“체계적 통계 전혀 없다”(2024-11-29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69939.html
○ 정부, 작은사업장 지원 의지 있나
정부가 작은 사업장의 육아휴직, 연장노동시간 등 노동법 준수를 지원하는 사업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지난 11월 24일, 직장갑질119와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기초노동질서 자율점검 지원’ 사업 예산은 2021년 2023년까지 매년 20억4100만원씩 책정되다가 2024년 13억7500만원으로 32.6% 줄었습니다.
기초노동질서 자율점검 지원사업은 노동부가 신설된 2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컨설팅을 해 주는 사업입니다. 공인노무사가 자율진단표 항목에 따라 직접 사업장에 점검, 취약부문 개선을 조언하는 컨설팅을 제공합니다. 그 항목은 근로계약서, 임금명세서, 노동시간, 최저임금, 육아휴직,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등입니다.
월담노조에서는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노동법위반 사례들이 큰 사업장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던 바 있는데요. 임금체불사례도, 산업재해 발생율도 모두 작은사업장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해 자율점검 지원사업을 해왔던 것이고요.
그런데 정부에서는 자율점검지원사업 예산을 삭감한 것과 더불어 자율진단표 항목도 크게 줄였다고 합니다. 자율진단표 항목은 2020년 15개에서 2023년 18개까지 늘었다가 2024년 10개로 줄었습니다. 사라진 항목은 계약서류 보존, 연장노동 제한, 휴게, 취업규칙 작성 및 신고,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육아휴직, 출산전후휴가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하네요.
빠진 항목들을 보면 하나같이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입니다. 특히 육아휴직과 출산전후휴가와 관련한 항목은 ‘저출생’이 국가위기라고 강조해온 정부에서 더더욱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노동약자를 위한다는 정부가 되려 근로조건 자율개선 사업 예산을 깎고 점검항목을 축소하는 것은 작은사업장 노동법개선에 대한 의지를 거둔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한정된 근로감독 인력과 작은사업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자율점검 사업예산과 점검항목 확대가 꼭 필요할텐데요.
정부는 지속적으로 ‘노동약자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주장해왔는데요. 노동계에서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포함하지도 않아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을 받는 중입니다. 정말로 정부가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싶다면, 기존에 해 왔던 이런 사업들을 더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 ‘"노동자성 인정 없는 노동약자법? 허울뿐"(2024-12-02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84537
· 노동약자 강조하더니, 올해 작은사업장 점검 급감(2024-12-03 매일노동뉴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75
○ 삼성전자 ’방사선 피폭‘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조사 착수…아리셀 대표는 혐의 부인
지난5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 재해자들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해당 재해가 ’중대산업재해‘로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 24일, 삼성전자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위반 혐의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 계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수사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재해자는 두 명입니다.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방사선 발생장치인 반도체 웨이퍼 비파괴검사 장비를 정비하다, 안전장치 불량으로 손 등을 방사선에 피폭돼 화상을 입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중대재해로 봅니다. 근로복지공단이 두 사람 모두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함에 따라 중대재해가 됐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의무에는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과리상의 조처도 포함됩니다. 이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삼성전자가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련 품목을 임의로 해제하고, 정비작업자의 피폭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한 바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관리상의 조처를 하지 못하였음이 인정될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재해자들이 입은 ’방사선 화상‘이 ’부상‘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질병으로 판단하는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부는 ’질병이 아니라 부상‘이라고 판단했는데요. 방사선에 피폭되어 화상을 입은게 어떻게 부상이 아니고 ’질병‘일 수 있는지, 삼성전자의 주장은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한편, 23명이 화재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재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고 합니다.
지난 11월 25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박 대표의 변호인은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이 실질적 경영자”라며 자신은 경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아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인가요? 박 대표는 이어서, 화재 안전 관리 조치가 일부 미흡했음을 인정하며서도 그러한 미흡함으로 인해 화재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혐의를 부인하였다고 합니다. 안전관리를 잘못한 건 맞는데 자기 잘못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인가요? 굉장히 무책임한 주장으로 들리네요.
중대재해처벌법은 곧 시행한지 3년을 맞이합니다. 재계에서는 꾸준히 이 법이 기업과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경영부담 완화를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산업재해율이 1위인 나라입니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여 노동안전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법이 만들어진 것일텐데요. 재계에서는 언제까지 우는 소리만 해댈까요. 그럴 시간에 더더욱 사업장 노동안전에 만반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관련기사>
· 삼성전자 첫 '중대재해' 조사‥피폭 노동자 아직 수술에 재활(2024-11-25 MBC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659773_36515.html
·‘아리셀 화재’ 대표 “실제 경영자는 아들” 중대재해법 위반 부인(2024-11-25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69055.html
○ 김문수 노동부장관, 안산·시흥 공단 간담회 열어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 12월 2일 오후 경기 안산시 경기테크노파크에서 ‘노동개혁 현장소통’ 간담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날 간담회는 안산상공회의소와 시흥상공회의소가 함께 개최한 것으로, 안산시흥지역의 기업 21개소에서 약 30여명의 기업인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간담회에서 시흥상공회의소는 ‘주52시간 근로시간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주52시간제를 지키려면 납품기일을 맞추지 못해, 고객사 요청만큼 계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결국 기업신뢰도와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겁니다.
안산상공회의소는 경직된 고용구조에 대한 부담을 전했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이 생산략을 늘리기 위해 직원을 더 고용하면 시장수요가 떨어졌을 대 곧바로 인건비 부담과 경영난으로 돌아오는데, 시장 상황과 업무량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야 기업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어째 이상합니다. 요구사항의 내용을 보면, 주52시간을 넘어 더 오랜 시간동안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 파견 혹은 초단기 등으로 노동자를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말로 들립니다. 근로기준법, 파견법, 기간제법 등 각종 노동법을 위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나 다름없네요.
이에 김문수 노동부장관은 “기업이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대응하고 이를 토대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경직적인 노동법제도는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유연한 법제도가 기업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노동부장관이라면 모름지기 사용자에게 노동법을 준수할 것을 상기시켜야 하지 않았을까요.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지 이제 세 달 정도 된 김문수 장관. 눈에 불을 켜고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관련기사>
· 김문수, 안산·시흥공단 간담회…"기업 활력 위해 법·제도 유연화 필요"(2024-12-02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202_0002980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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